개발자여 시를 읽자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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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일에 야근하며 일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말이면 전공서적을 읽기도 하고 개발 스터디를 나가거나 취미로 코딩도 하는 삶을 보내면서 누군가에겐 왜 그러고 사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왜라니? 나는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내 삶이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노라고 그냥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짐짝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코딩을 하고 공부를 할 때에 나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배워가는 것에 기쁨을 느꼈지만 내가 익숙하게 느끼는 개발을 벗어나서 낮선 사람들을 만나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접해야 할 때면 두려움이 나를 압도했다. 흔히 개발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사람들과 관계를 이뤄가는데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근래에 인문학이 주목받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우연히 읽게 된 파울로코엘료의 소설이 내 관심을 사로 잡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추상적이고 식상하다며 비판받았지만 애초에 이 분야에 젬병인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작에는 왜 이런 깨달음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나이를 먹고서야 이해할 눈이 생겼다고 하겠다. 어쨌건 책을 통해서 나는 그 동안 내 삶에서 주어진 질문들에 대한 답이 보이는 듯 했다. 이를 계기로 더 이상 전공서적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시와 소설을 읽게 된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신선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관계에 있어서의 약점, 아니 더 정확히는 삶의 성찰에 대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인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시와 소설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한 축은 철학이었다. 철학 관련 서적들을 접하면서 철학이 개발의 근간에도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철학적 사고야 말로 논리적 사고의 극치인데 이것은 우리가 하는 개발에서 절대적 요소이지 않던가. 나는 개발자라면 철학은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가 그 동안 이를 낮설게 남겨 두었던 것은 학창시절 줄줄히외워야 했던 나쁜 기억들 때문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 철학자의 이름에 의미가 있는게 아니고, 그들이 했던 말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들의 사고 방식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철학을 좋아할 수 있다.

이 책 ‘철학적 책 읽기의 즐거움’에서는 시를 소개하고 그 시가 배경으로 하는 철학적 사고를 분석한다. 책에서는 철학을 이렇게 표현한다. 철학자가 어떠한 새로운 느낌 혹은 개념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기존의 개념으로 설명 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다시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의 그물을 짜는 것이 철학이다. 즉, 철학자는 많은 개념들을 추상화하여 하나의 어떤 개념안에 포괄시키는데 세상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있다면 이게 바로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이 과정이 어딘가 상당히 익숙하지 않나? 알다시피 개발의 많은 부분은 추상화와의 싸움이다. 내가 만드는 추상화된 개념, 클래스, 함수 혹은 데이터들이 실세계의 요구사항들을 포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구조를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그러다 미처 누락했거나 또는 새로 들어온 요구사항이 기존에 내가 추상화해둔 개념안에 녹여 줄 수 없다면 우리는 코드를 뒤엎거나 꼼수로 끼워넣는 억지를 부린다. 이 부분이 개발자라면 충분히 철학을 즐거워 할 수 있다고 내가 말하는 부분이다. 디테일은 달라도 방법은 같다.

다음으로 시로 넘어가보자. 저자는 시와 철학은 인문학의 양 극단에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시라는 것은 철학자의 예에서 처럼 시인이 어떤 새로운 개념 혹은 느낌을 만났을 때, 그것은 기존의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새로운 말을 만들어 억지로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어떠한 논리적 설명을 하거나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부족한 언어로 억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시가 어렵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이것 역시 개발의 예제로 끌고 온다면 좀처럼 알 수 없는 클라이언트 혹은 기획자의 마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도대체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는 물론이고 클라이언트 본인도 모른다. 이점에서 개발자 (철학자) 와 클라이언트 (시인) 간의 괴리가 생긴다. 농담삼아 붙여보았지만 어딘가 맞아 떨어지는듯한 기분이 씁쓸하다.

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느낌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감각에 좀 더 민감한 편이고 나같은 개발자는 좀 더 둔한 편이다. 나는 바로 이 감각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이 감각이 없이는 시인은 커녕 보통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선천적인 예민한 감각이 없는 내가 이것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철학적 사고를 통한 이해가 지름길이라고 본다.

나는 균형을 맞추고 싶다. 논리적 사고 능력을 밀어붙여 개발자로서 탁월한 것도 좋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개발자이지만 그 이전에 한 인간이니까. 철저히 논리적인 두뇌만 홀로 남아있는 내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21명의 시인과 철학자를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낮선 개념을 표현하려 했던 시와 철학을 소개한다. 먼저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 담겨있는 철학적 사고를 풀어나감으로서 시가 어렵게 느껴져도 설명을 차근차근 따라가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깊게 들어가기 보다는 다양한 생각의 화두를 던져주는데서 멈춘다. 이 책을 통해 시와 철학의 매력을 맛보고 관심이 생기는 부분에 더 깊게 들어가려는 이에게 이보다 좋은 입문서가 있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된 시를 하나 소개해 본다.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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