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미 알고 있어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겠어?”

영화 컨택트에서 이야기 한다. 평소에 나라면 당연히 거부할텐데, 영화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래서 모든게 이미 결정되 있는게 확실하다면, 그렇다면 애써 부정하는 것이 자기 존재에 대한 표출에 불과할 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는게 산다는 것이라면.

컨택트의 원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사물을 인과관계로 볼 것인가 목적론적으로 볼 것인가 묻는다. 둘은 서로 배타적이며 서로다른 관점일 뿐 어느쪽이 더 옳거나 그른것은 아니다. 목적론적 삶에는 결과가 정해져 있으며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살아간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자유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를 따라 살겠다는 강한 동기가 있어 정해진 결과대로 행동하고 싶을 뿐. 그런 동기가 없다면 일의 결과를 애초에 알수도 없다고 말한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목적론적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인과론적인 것과 목적론적인 것이 서로를 설명하지 않듯이.

그렇다면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목적론적 삶에서 남은 것은 정해진 결과를 순간순간 확인하는 태도이다. 책에서는 말한다. 이미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반응이 있을지 아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대화를 하는 이유는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알고있는 결과를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만드는 행동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것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을 즐겨라.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남은 것은 이 순간들을 확인하고 즐기는 것 뿐이다.

우리가 확고하게 아는 미래가 몇 가지 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 비록 언제 어떻게 죽을것인지 선명하게 떠올릴 수는 없지만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음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하면 현재의 순간이 소중해진다. 이것이 목적론적 태도를 갖는 사람이 현재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면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난다. 신을 받드는 이는 신의 이름을 의롭게 하려고 자신의 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기꺼이 스스로의 생을 헌신한다. 거기에는 믿음이라는 강한 동기가 있어 정해진 목적에 벗어나는 삶은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자유의지가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