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놀이터

그 시절 뒷산 계곡에는 가재가 살았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가재. 아빠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발을 물에 담그고, 바위들을 하나 둘 들썩 거린다. 그러면 가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 바쁘고, 나는 차마 물릴까 잡아 볼 생각은 못하고 그저 신기한 눈으로만 그 광경 속에 풍덩 젖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깜짝 놀랄 일이지만 석면의 공포가 모두에게 각인되기 전까지는 슬레이트만큼 좋은 불판도 없었다. 어딘가 건축 자재 더미에서 주워온 슬레이트를 깨끗이 씻어 불위에 달군다. 슬레이트 표면의 굴곡을 이용해 볼록한 부분에 고기를 얹으면 자연히 돼지고기의 기름들은 오목한 부분을 따라 흘러내리고 고기는 바싹하게 익는다. 그때는 모두가 칭송하던 최고의 고기 불판이었다. 그렇게 계곡 한 구석에 둘러앉아 흥얼거리고 취했던 것이다.

아빠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던 낚시는 가족 모두의 취미가 되어야 했다. 우리 가족의 여행이나 나들이 장소는 곧 낚시하기 좋은 곳을 의미했다. 붕어를 따라 장어를 따라 때로는 길도 없는 길을 뚫고 수풀 속으로, 때로는 산속 깊숙이 숨겨진 저수지를 찾아 사륜구동 차를 이끌고 들어갔다. 그곳 아무도 없는 곳, 정적과 이따금 물고기만이 뻐끔대는 곳에 텐트를 치고 낚싯대를 던져놓고는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 시절 나에게는 저수지가 호수였고 농업용 수로가 개울물이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메뚜기 튀김을 본 것도 그것을 입에 넣어 본 것도 딱 한 번 있었다. 동네 친구네 집에 들렀다가 갈색의 메뚜기 사체들이 바싹하게 굳은 채 한 솥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때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 집 앞, 곧 우리 집 앞이기도 한 그곳에는 몇 개의 이름 없는 무덤과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그곳은 나와 그 친구들의 앞마당이자 운동장이었다. 그곳에서 메뚜기나 잠자리를 잡으며 뛰어다녔다. 어느 날엔가 비가 그치고 그곳 묘지 앞에 둘이 섰는데 무지개를 봤던 기억이 난다. 무지개를 보며 나와 친구는 요새 비는 산성비라서 맞으면 대머리가 되거나 집이 녹아내릴 수 있다고 심각하게 걱정을 하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내 마음에 자연이 심긴 이유를 훑어보지만 그 어린날 숲 속 글쓰기 대회에서 자연 파괴는 인간의 자살행위라고 글을 토해내던 나의 동기는 찾을 수가 없다.

Saudade 외 1편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 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슨 말이냐면, 정말로 아름다운 소녀가 하나 있다고 해봐. 만일 지금이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녀가 늙을 것이고 죽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른다면, 아마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을 거야. 어떤 아름다운 것이 그 모습대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럴 경우 난 그것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걸. 이것은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는 것이다, 꼭 오늘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야. 반대로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난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그러면서 난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동정심도 함께 느끼게 된다네. – 크눌프, 헤르만 헤세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한 마지막 퇴근길이 그렇게 아쉬웠던 것이고, 전학 가던 날 버스에서 느끼던 향수가 아직까지 생생한 것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기억은 늘 여행중의 감정보다 짙었던 것이야. 결국 대상이 어떤 것이었던간에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이것들이야 말로 아름다운 것들이지 않나 해.

 

방랑은 향수와 같다

왜 걷는지 알지 못한다
어디서 부터 시작했는지
어디로 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 언저리의 조각들을 더듬어
고향의 향수를 찾는다

그 때부터였을까
그 사람이었을까
이 방랑의 시작은

고향을 찾아 떠나거나
고향이 좋아 머물거나
모두 고향을 찾는 향수의 길

우리는 고향에 가기 위해
오늘밤 이곳에 머문다

내일밤은 너는 너의 집에서
나는 나의 길위에서
향수에 젖은 밤을 지새운다

겨울

떠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얼버무렸다. 홀로 취해 얼음 바람에 맞서 우뚝 서본다. 가슴에 응어리 찬 무엇을 뱉어보려 신음하는데, 사실은 행복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불안은 행복과 닿아있었던가. 나는 평생 고독을 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마음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이칠 때면, 무언가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 때론 그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바다 위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잠시 따뜻하다가, 잠시 소란스럽고, 다소 지나친 뜨거움이 지나고 나자 세상은 다시 홀로인듯 하다. 지난 소란들은 잠시 입었다 벗는 계절의 외투였나. 겨울은 벌거 벗는 계절이다.

겨울이 나의 기원인건, 내가 겨울에서 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문득 지난 겨울의 뜨거웠던 기억이 아득하다. 나는 지난 따뜻한 계절들 사이에서 얼마나 희석되었나.

어쩌면 사람은 나이들며 배워 가는게 아니라 희석되어 가는 것이다. 털이불은 털을 날리고, 꽃잎은 흐트러지고, 우리 관계들은 닳아져서, 결국 모든건 먼지로 수렴한다. 그게 요즘 서울에 먼지가 가득한 이유.

금기는 아름답다

금기는 꼭 깨어야 하는 존재인가? 그냥 처음 상태 그대로, 신비로운 모습으로 두면 안되는 걸까? 이것이 우리가 더 이상 배우기를 포기하고 무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금기임을, 그리고 껍데기임을 인식하는데서 멈추면 안되느냐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금기는 깨더라도 어떤 금기는 깨지 않고 남겨두면 안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모든 신비로움을 정복하고 더 이상 찾아볼 신비로움이 없는 상태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나는 문득 여기서 현대사회를 이끄는 끝없는 경제 성장의 프레임을 떠올린다. 회사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면 주가, 즉 그 회사의 미래 가치는 떨어진다. 단지 지금의 수익을 유지하는 것 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이미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그래서 회사는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고 대기업들은 모든 분야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은 무한한 배움과 성장에 대한 예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끝없는 배움만 있다면 누구나 청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그래서 죽음이 내일이라도 끝없이 성장하는 것만이 옳은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그 성장이란 것들은 가령,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드는 것을 극복하는 것들일텐데, 과연 그것이 긍정적인 것만을 우리에게 주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을때 그 동안 꽤나 신념과 금기들을 깨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 내가 느끼게 된 것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었다.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금기는 끝없이 깨어져 나갔지만 결국 그 끝에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만 있었을 뿐이다.

최근에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다. 손에 꼽을만한 많은 대사들이 있었겠지만 내게 유일하게 남은 대사는 ‘You need me’ 였다. 무엇이 나를 저사람이 아니면 안되게 하는 걸까. 그 제약조건을 깨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많은 금기들을 주입받는다. 이건 해도 되고 저건 하면 나빠. 어느 때에 이르면 그 금기들을 스스로 깨는 시점이 오는데,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지속하도록 장려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는 나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싶다. 그 금기를 사회가 부여했으니 깨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금기는 아름다우므로 지키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집착하는 금기가 혹은 신념이 단지 어떤 관념일 뿐임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머리로 이해했다고 그 관념을 깨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삶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착이다.

노랑수선화 / 사랑에 답하여

던져진줄 모르는 목숨이
길위에 던져졌다

전신주 끝에 대롱 걸린 숨통을
간신히 부여잡았을 때
이전의 나는 죽고
또 다른 가능성의 나로서 건져진다

어제를 팔아 오늘을 살지않으려1)
주머니를 털어 길위에 쏟아버렸다

너는 없고 나만 있던 길이
나조차 없는 좌절이 될때
너의 손길이 나를 채운다

길위의 표지가 무시되고
역경의 때에 세상이 함몰되고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로 맺어질 때
거기서 너를 발견한다

결국 다 사라지고 마는데
보이지 않는 것에서 찾지 않으면
어디서 너를 찾는단 말인가

1) “경계-박노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