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1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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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 플리마켓을 마감 직전에 부랴부랴 찾아간다. 꽤 괜찮은 물건들이 많아서 더 일찍오지 못한게 아쉽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익숙한 얼굴 한 명을 마주한다. 예전에 다른 프로젝트에서 동화책 작가라고 소개하셨던 그 분은 직접 그리신 예쁜 엽서도 팔고 초상화도 그려주고 계셨다. 지난번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셨을 때 그 일에서 본인이 얼마나 의미를 찾고 있고 또 거기에 자신의 재능을 잘 발휘하고 있는지 들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초상화가 그려지기를 기다린다. 그 분은 내 얼굴을 흘끗 흘끗 보면서 그림을 그려나가신다. 누군가가 초상화를 그려주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눈을 마주하기가 부끄럽다. 아니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행위가 사실은 부끄럽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눈을 마주친다. 대체 눈을 마주친다는 행동은 어째서 이렇게 마음을 초조하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문득 48시간 영화제에서 태훈님이 피켓을 들고 길거리의 사람들과 아이컨택을 시도하던 기억이 난다.
그림이 완성되고 나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며 초조해하던 내 마음은 한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다. 눈을 맞춤이 가진 어떤 힘이 나를 사로 잡는다.

[관찰일기] 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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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이 굳은채 서있는 나뭇가지 무리 속에 가지 하나가 흔들린다. 그 홀로 흔들림은 군중 한 가운데서 일어났다. 군중에서 삐져나와 있다 흔들린게 아니라 주변 무리에 둘러 싸인채 모두가 딱딱히 굳은 가운데 혼자서 흔들렸다.
무엇이 저 혼자 흔들리게 했을까 생각하는데 좀 더 많은 가지들이 산발적으로 흔들린다. 함께 흔들리는게 아니라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씩 흔들리고 여전히 대부분은 굳은채 서있다. 특별히 어떤 가지가 더 잘 흔들리는 게 아니라 이번엔 이 가지가 다음엔 저 가지가 흔들렸다.
모든 사물엔 자기의 주파수가 있다고 했다. 그 주파수가 일치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그 둘은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그것이 철근이나 콘크리트여도 말이다.
나뭇가지들이 말라비틀어진 화단 가운데 바람이 분다. 바람이 가져오는 주파수에 올라탄 가지들은 혼자 춤을 춘다. 자신의 춤을.

[관찰일기] 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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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여한 해커와 화가 프로젝트의 주제는 공간이었다. 마지막에 호스트님이 한 말이 떠올라 내 방 책상위에서, 침대 위에서 방을 한 번 내려다 본다. 정말 익숙한 공간이지만 평소와는 다른 시선에서 방을 바라보려고 해본다. 일단 방 전체에서 느껴지는 색깔을 찾아본다. 주로 초록과 주황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물론 시간에 따라 색도 다르겠지만 내가 이 방을 인식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밤시간이니 이게 제일 가깝겠다. 계절은 언제 쯤일지 생각해본다. 전체적인 방의 색이 따스하긴 하지만 그다지 밝지는 않으니 아직 해가 짧은 이른 봄으로 하면 될까.
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근간이고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록이 많은 것은 내가 평소 가진 자연에 대한 관심 때문인것 같았고 주황이 많은 것은 내가 밤시간이 주는 안락함을 즐기는데 그에 딱 맞는 색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이렇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는데 은근히 들어맞는 것 같아 흥미롭다. 방은 대체로 정돈된 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또 그렇지많은 않다. 이건 내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냥 잠이나 자자. 결론은 방정리를 해야겠다.

[관찰일기] 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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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쿨렐레를 꺼내들었다. 사실 우쿨렐레는 거의 칠줄을 모르는데 기타를 쳐본 덕에 코드 한 번만 보면 어렵진 않았다. 아니 그냥 내가 치는 곡이 쉽다. 딸랑 코드 세개. 
보통 우쿨렐레는 선물로 처음 접하나보다. 오늘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쿨렐레를 가지고 있던 세 사람 모두 선물받은거였다. 나 역시 이걸 선물로 받았는데 처음 받았을때는 튜닝을 해도해도 자꾸 틀어져서 싸구려인가 하고 그냥 버려뒀다. 그런데 지금은 튜닝이 틀어지지도 않고 소리가 정말 잘 난다 – 그래도 싸구려는 맞다. 
우쿨렐레의 매력 중 하나는 정말 쉽다는 점이다. 코드도 잡기쉽고 손가락도 안아프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매력은 작아서 어디든 가지고 다니기 쉽다는 거 아닐까. 과거에 기타를 여행에 휴대하고 싶어서 작은기타를 장만해 보기도 했지만 별로 만족스럽진 않았다. 어디든 악기를 가지고 갈 수 있다는건 꽤 큰 장점이다. 
그 동안 우쿨렐레를 등한시 했던건 소리가 맘에 안들어서였는데 단지 적절한 곡을 못만나서였던듯 싶다. 극장에서 인사이드아웃과 함께 상영했던 Lava라는 노래가 있는데 우쿨렐레와 참 잘어울리는 곡 같다. 우쿨렐레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기로 마음 먹어본다.

[관찰일기]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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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앞 카페, Coffee Promise. 매일 출퇴근 길 이 작은 카페 앞을 지나치면서 흐뭇한 기분을 받곤 한다. 간판에는 커피 잔에 매달린 고양이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전면 유리 속 TV엔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유행에도 참 민감해서 버스커버스커가 떴을 땐 벗꽃 엔딩이 겨울왕국이 떴을땐 Let it go가 흘러나오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 위에 흐르는 전광판엔 신메뉴 홍보나 이따금 수정아 사랑해 따위가 흐르고 카페 앞엔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한 뭉치 놓여있다. 내 입꼬리를 히죽 당기는 저 귀여운 리락쿠마의 하얀 배때기, 그 옆에서 겨울 냄새 풍기며 서있는 산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기에 라바가 있었다는건 안비밀.) 이렇게 정성이 곧곧에서 묻어나는 이 카페가 온몸으로 뿜어주는 단어는 단 하나.

낭만.

이쯤 되면 카페 주인이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생긴 분일지 궁금해지지 않나. 흥미로운건 아침나절 내가 출근하며 발견하는 사람은 머리를 빡빡 밀은 작고 빼빼마른 아저씨다. 낭만같은건 이미 카페에 다 꺼내어버려 자신에겐 남은게 없다는 듯 홀쭉한 아저씨. 그렇지만 몇 년째 그 자리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잊혀진 낭만을 꺼내주는 이 카페 완전 소중하지 아니한가. 언젠가 저 아저씨를 인터뷰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