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

옷이라는 놈은 항상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며 한 껏 멋을 부리지만 내게는 입어야 해서 입는게 옷이었다.

고등학교때였다. 그땐 왜 그랬는지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토요일에도 갔던가 보다. 토요일에 만났던 누나가 나를 일요일에도 보고는 정말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제 집에 안들어갔니?”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해 하는데,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왔다고 하는 소리였다. 같은 옷을 이틀 입는게 그런 뜻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더구나 그 말을 하는 누나는 나름 독실한 신앙때문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사람 아니었나. 나는 그 순진한 표정으로 건네던 그 말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이후로는 옷을 매일 돌려가며 입었다. 그 전까지는 옷이란 같은 옷을 더러워질때까지 입고 세탁기에 넣는게 보통이었다. 대략 일주일에 한 두벌 정도를 입었다는 이야기다. 사실은 옷을 돌려입는 지금도 빨기 전까지 입는 횟수를 계산해보면 이전과 별로 차이가 없을 거다.

유난히 옷을 못입던 내가 유난히 더 신경써보자고 애쓴건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처음으로 엄마가 사다주는 옷이아니라 내가 옷을 사입던 때였다. 최근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보면 남주가 여주에게 잘보이려고 나비넥타이를 하고 핑크색 자켓을 입고 데이트에 나간다. 내가 그런 꼴이었다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영화 <지금만나러 갑니다>

직장생활을 어느정도 하고 나자 생활이 넉넉해졌다는 착각에 비싼 옷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싼 옷은 아무거나 사 입어도 왠지 멋이 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때 입던 촌스러움과 무엇이 달랐을까 싶다.

나는 그렇게 잘 입지도 못하면서 잘 입어보겠다고 애썼던 것 같다. 내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그러니 또 시간을 쓰고. 세상에 옷만 없어져도 내 집 장만의 시간이 5년은 단축되지 않을까.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그거라도 있어야 했지 않았겠나. 내 경우처럼 나는 충분히 정상인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혹은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혹은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우월감의 표출을 위해서, 어쨌든 모두 분출해야 하는 욕망을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동일한 욕구를 총부리를 들이대며 해결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옷은 평화를 수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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