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synthesis

지난 주말 광합성이라는 보드게임을 플레이했다. 이 게임을 한 줄로 요약하면 빈 땅에 광합성을 통해 나무를 열심히 키우는 게임이다. 최근에 어느 식물학자가 쓴 랩 걸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묘사된 나무에 대한 내용과 이 게임이 그려낸 나무들의 성장 방식이 오버랩되면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무의 성장은 기본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기위한 치열한 경쟁의 과정이다. 나무의 키가 큰 이유도 그것이고 사방으로 뻗는 가지와 이파리들도 거기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드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는 햇빛을 다른 나무들을 피해 더 받는 것이다. 그것은 주변의 어떤 나무보다 내 키를 키워서 달성할 수도 있고, 텅 빈 땅위에서 경쟁자 없이 좀 더 수월하게 달성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이게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태양이 계속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 주위에서 360도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은 햇빛을 받기에 불리해도 어느 순간에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게임의 승리를 위해선 이런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나무를 성장시키는게 중요할 것이다.

언뜻 보면 이 게임이 반영한 현실의 경쟁이라든가 시간에 따른 기회의 변화들이 눈에 띄겠지만 더 재밌는 부분은 따로 있다.

식물이 생장을 위해 필요한 자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게임은 태양에너지 하나만을 다룬다. 플레이어는 큰 나무로부터 태양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사용해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성장시킨다. 재밌는 것은 작은 나무는 주변의 큰 나무들에 둘러쌓여 있으므로 스스로 성장할 태양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큰 나무들이 축적한 태양 에너지의 소모를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랩 걸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중에 다 자란 나무가 어떻게 작은 나무들을 키우는지에 대한 부분이 있다.

“어린 단풍나무는 몇 년 동안 성공적으로 주변의 영양분을 모두 싹쓸이를 해온 성숙한 단풍나무의 그늘에서 햇빛을 확보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다 자란 단풍나무가 자손들에게 제공하는 한 가지 믿을 만한 부모의 사랑이 있다. 매일 밤 자원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을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려 약한 어린 나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루 더 버틸 힘을 얻는다. 어린 나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물 뿐만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고, 100년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단풍나무이려면 이 어린 나무들이 얻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떤 부모도 자식들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다.”

현실에서 큰 나무들이 깊은 뿌리를 통해 물을 길어 올리면 작은 나무들은 그 물을 먹고 자란다. 게임에서는 큰나무들이 높이 뻗은 키로 에너지를 모으면 작은 나무들은 그 에너지를 이용해 큰 나무가 된다.

이는 인간세상에서도 비슷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차고 자리를 잡는다면 그럭저럭 혼자서 지내기에는 충분한 수입을 만든다. 그것은 그가 그 직장에서 혹은 자기 사업에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누군가 책임질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을 지키기위해 그리고 길러내기 위해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소모한다.

그런데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뿌리를 내리는 것과 매우 비슷해서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면 더이상 새로운곳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곳으로 뿌리를 뻗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자리를 잡으려 노력하게되고 뿌리는 더더욱 깊어진다.

랩 걸에서는 큰 나무에는 깊은 뿌리가 있으니 수월하게 물을 길러오는 것처럼 묘사했지만 사실은 작은 나무가 물을 가져가는만큼 큰 나무는 더 깊은곳에서 물을 길러와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큰 나무는 뿌리를 점점 더 깊게 깊게 내려야만 할 것이고, 뿌리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 이상 어디론가 이동할 수 있는 자유는 포기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한 개체는 대체된다. 한 개체가 깊게 뿌리를 내린만큼 새로운 개체는 자라난다. 새로운 개체는 낡은 개체가 내려야 했던 뿌리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깨닫지 못한 사실은 갈등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여기 낡은 개체에게 한 가지 위안이 있다. 게임에서는 나무가 다 자라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단계가 있다. 사실 그게 나무 성장의 목적이다. 게임의 승점은 오로지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단계로서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은, 단지 땅위에 자라 있는 나무는 승점을 주지 못한다.

여기 인생을, 아니 생명체의 육성과 순환을 다룬 게임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

나는 이 게임을 통해 내가 뿌리에 대해 가졌던 혐오들을 되돌아 보고, 내가 축적하는 양분들이 갈 곳에 대한 힌트를 조금 얻는 것 같다.

“Photosynthesis”에 대한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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