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여행 아니면 사랑이어야 할까

바야흐로 YOLO의 시대. 한 번 살고 죽는 인생 신나게 살아보자며 이번 연휴는 또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는 우리들. 그 길위에 희생되는 것들은 말이 없다. 사실 우리에겐 YOLO의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욕구를 합리화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

우리는 어제도 사랑을 했지만 오늘도 사랑을 하고 내일 또 사랑을 할 거다. 이 사랑이 아니면, 저 사랑을, 저것도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사랑을 할 때마다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선물의 댓가는 다른 누군가의 노동력이거나, 다른 누군가의 집에 버려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사랑은 신성하니까.

최근 학생들의 교내 휴대폰 사용금지는 학생들의 통신 자유를 침해한다며 개선이 권고되었다.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머리를 빡빡 밀어야하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어야 하던 시대에서 점차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로의 이행. 큰 맥락에서 세상은 우리가 원하던 것들을 이뤄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권이라는 기치 아래 더 많은 변화를 점점 더 빨리 수용하고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낡은 세대를 밀어낸다. 그리고 밀려난 세대는 적응하거나 뒤쳐지거나. 인권이라는 가치 수호는 분명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 주지만 그것이 동시에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는 고민해 본적 있을까?

쾌락의 자유가 범람하는 시대.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하므로 모두가 미국인처럼 누리고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시대. 보이는 것마다 떠나라 말하고 들리는 것마다 사랑을 말하는 시대. 우리의 쾌락은 소비로, 소비의 근거는 자유와 인권으로 설명하는 시대.

우리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일까? 자유의 전제 조건이 책임이라면, 우리의 행동들이 어떤 책임을 수반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지식은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우리의 작은 행동이 세상에 주는 영향의 범위에 대해 고민해 보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 것일까.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지만, 우리가 행동하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들여다 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나는 세상 모든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사람에게도 마음이 쓰이고 동물에게도 마음이 쓰이고 나무 한 그루에도 마음이 쓰인다. 다만 사람의 세상은 단지 사람만 바라볼 뿐이고 이제 겨우 동물에게도 이따금 마음을 쓸 뿐이다. 사람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단지 일부분이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그래서 당신의 쾌락들도 세상과 나누자고 하면 버럭 화를 낸다.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자연의 권리를, 아니 세상엔 어느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으므로, 유일하게 우리가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가치는 원래 있던 것들을 그대로 두는 것의 가치인지 모른다. 그것을 같이 고민 할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미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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