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초

오컬 벽에 붙어있던 네권의 실제본 편집본이었다. 하얀 벽위에 올려진 투박한 갈색의 표지는 우둘투둘 손글씨로 세번째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책을 꿰메는 실처럼 오밀조밀하고 한땀한땀 쓰여진 글귀들이 풋풋하고 여린 감성들을 훔쳐내고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도 그래’라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내 이야기를 함께 얹고 싶은 감정에 휩싸였던 것 같다.

세상은 대체로 논리를 요구하지만 사람은 논리와 감성을 가지고 있다. 갈곳 없는 감성들은 책장위에 수북히 올려지거나 아무도 모르는 개인적인공간에 그러나 의지만 있으면 찾을 수 있는 곳에 한 자, 한 자 보관되어진다.

나는 인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이 오기를 꿈꾸지만 우리가 태어난 이상 살아 가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필요들이 충족되어지는 세상이 먼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기에 문학의 역할이 있다. 요새는 보고 듣고 심지어 만질 수 까지 있는 멀티미디어 세상이지만 읽고 쓰는 형태의 문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글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고 자신이 쓰는 글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괴리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준다. 이것은 글을 계속 쓰게 만들거나 그만 두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빨간 약을 삼킨 이래로, 그리고 당신이 청춘을 계속 찬양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글들이 쌓이고 쌓이면 무엇이 되는 걸까?

나는 비유적 표현으로서 한 권의 책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방식으로 인해 나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글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 글을 쓰기로 목표했기 때문에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글과 내가 마주하는 삶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행동으로 옳겼기 때문에 자연히 탄생하는 결과물일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아마도 나의 고통을 덜어주진 못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쓰고 읽는 것은 거기에 나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의 한 가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전 지구적이 되기를, 그래서 나의 필요가 개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거기에 닿는 한가지 길은 글이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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