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그동안 수없는 인연들을 떠내려 보냈다. 때로는 흘려보냈지만, 때로는 밀쳐 보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별이라면 작별의 키스를 받고 보냈던 기억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주었던 것일까. 가끔 그 사람 생각이 날 때가 있다.
하나의 인연은, 하나의 관계는 언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일까. 영화 ‘코코’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에서 지워진다면 그때가 진짜 마지막일까. 마음에 남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관념으로만 남은 기억은 대상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모든 경험은 유전자에 기록된다고 한다. 그게 진짜 사실인지, 남는다고 해도 얼마나 남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믿고 싶은 게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시간과 기억들이 응축되어 후대에 전해진다는 생각은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그것은 나의 유전자는 나보다 앞서 살아온 모든 선조들의 생활과, 경험과, 환희와, 애씀들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뜻이고, 나는 그러한 응축된 생애들이 연결된 거대한 대열에서 한 점으로, 그리고 뒤따르는 모든 후대에 이르는 단 하나의 연결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해서 박제된 나의 기억과 대상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결국 집착은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결국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만난 것이 극히 작은 확률이었다고 해도, 어차피 시간이 무한하다면 언젠가 그 확률이 다시 발현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의 모든 만남과 사건들을 평준화하고 모든 의미를 제거한다. 우리가 오늘의 만남을 수백 번 수억 번 반복할 수 있다면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우리의 지금 만남에 대한 모욕이다.
내가 다만 바라야 할 것은 이번의 마지막이 다른 어떤 마지막과도 구별되기를, 그래서 오늘의 만남이 오늘로서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정신이 간직하는 한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를, 그리고 오늘 내가 가진 기억과 정신은 내가 가질 수 있는, 다른 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정신들과도 구분되는 의미를 갖기를, 그럼으로써 의미와 의미부여의 체인은 끝없이 이어지기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삶으로서 영원히 이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