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임레 케르테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이밤, 나치 강제수용소의 이야기를 담은 ‘운명’이라는 책을 읽고 울컥거리는 감정을 다스릴수 없어 여기에 끄적여본다.

“중간에 서 있던 나는 10~20분 정도의 시간만 기다리면 곧장 가스실로 가게 될지, 아니면 다시 살아 날 수 있을지 결정이 내려지는 시점에 도달한다. 그런데 기다리는 중간에도 열은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이고 나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체 대열이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큰 걸음을 떼든 작은 걸음을 떼든 조금씩 움직여 나간다. … 두 노인은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그러한 일이 단순히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로 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마치 모든것이 갑자기 우리한테 그냥 ‘왔던’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모든 것이 그냥 지나간 것처럼, 끝난 것처럼,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불분명한 것처럼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관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 나는 이어질 수 없는 나의 실존을 계속 살게 될 것이다. …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가게 될 길 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이 대해서 말할 것이다.”

세상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부조리가 있지만 그 부조리는 결코 갑자기 다가와 우리를 덮치지 않는다. 그것에 가까워져 가는 과정에서 우리도 분명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은 아우슈비츠 안에서도 행복과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중요한건 지금 이순간에도 바로 1초전과 1초 이후로 시간은 흐르고 있고 거기에서 내가 하는 행동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말하는 그 강인한 인내와 의지에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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