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신의 부재

책에는 다음 세명의 주요 인물들이 나온다.

닐: 현생에서 신의 존재를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김으로서 신을 증오한다.
재니스: 끊임없이 삶에서 신의 의미를 찾는 사람. 주어진 것에 그냥 만족하고 머물기 보다는 그것에 신이 부여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으려 애쓴다.
이선: 삶의 목표를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사람.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생애 내내 그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린다.

내가 이 책을 읽어가며 점진적으로 생겨났던 기대감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끊임 없이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을 조명하면서 그 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려주는 것.
2. 삶의 의미에 대한 고뇌를 하기 보다는 그러한 수고를 쉽게 종교에 맡겨버리고 거기서 해답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3. 종교가 사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논리로 납득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믿음이며 이것을 보여줌으로서 그것의 역설을 제시하는 것.

세번째의 기대는 책의 마지막에 가진 생각인데, 책은 아래와 같이 마무리 된다.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닐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것이다.”

마침내 신에 대한 무조건 적인 사랑을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떨어진채 고통받는 닐에 대한 묘사이다. 거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논리도 없으며 그저 우연이 행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닐은 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므로 신을 여전히 사랑한다.

책을 덮으면서 잠정적으로 내렸던 결론은 나의 세번째 기대처럼, 종교가 사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신에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며 이것을 작가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참고해 보았지만 나와 비슷하게 내린 결론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종교란 존재는 사람들이 삶에 대한 고뇌의 짐을 쉽게 그들에 내맡기고 자신들의 삶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왔다. 물론 여기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이것은 내게 메트릭스에서 빨간약 대신 파란약을 먹는 행위와 비슷하게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옳으냐 그르냐에 관한 부분은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보므로 여기에 딱히 뭐라고 이야기를 보태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작가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작가는 정말 그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무조건적 신앙에 대한 예찬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히 대부분의 신앙심들이 이러한 이상적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테드창의 그간의 다른 소설들에서 보여진 천재적인 상상력과 우월한 인간상에 대한 모습들을 보았을 때, 그는 혹시 오히려 우리가 납득하기 힘들 만큼 우연에 의존한 신의 행동들을 그려놓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사랑하는게 진정한 신앙이라는 –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 주장을 펼친뒤에 이래도 당신은 신앙을 가지고 싶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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