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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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칙금납부 통고서

고지번호 : 112120165006950
일시: 2016년 2월 28일 09: 49
금액: 20,000원
적용법조항: 도로교통법 제 10조 2항
위반내용: 보행자위반(육교로밑, 지하도 바로위외의 무단횡단)

엄밀히 말하자면 이면도로는 아니지만 보통 이면도로라고도 부르는 우리 동네 주택가 근처 좁은 도로위에서 딱지를 뗐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건넜기에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 앞에서 아직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정신 못차린채 순순히 따른다. 찌릭찌릭거리며 출력되는 고지서를 보고나서야 눈이 번쩍뜨이며 같이건넌 저 사람도 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떼를 써보지만 헛 일. 무표정한 교통경찰은 이러한 경우엔 시간끌어봤자 귀찮아진다는 걸 잘 안다는듯 순식간에 처리하고 자리를 뜬다.

내 손에 든 고지서를 순순히 인정하기엔 떠오르는 핑계거리가 많았다. 내가 가로지르는 길 좌우로는 횡단보도가 있었는데 두 횡단 보도 사이 거리는 100미터도 안되보였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그 횡단보도들이 동시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길을 건넜다. 당연히 차들이 신호를 지킨다면 내가 건너는 길은 지나가는 차 한 대 없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기때문에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쉽게 건너던 길이다. 그날도 내 옆의 모르는 아저씨와 함께 건너던 참이었다. 또한 4차선이지만 좌우로 주차된 차들로 인해 사실상 2차선인 도로는 그나마도 설치된 많은 횡단보도때문에 차들이 빠르게 다니지도 못했다. 지난 4년간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 길을 건너곤 했다.

그래, 어쨌든 내가 법을 어겼으니 잘못했다고 하자. 그래도 이정도는 계도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날 이후로 매일아침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이 일이 생각나서 화가 치밀었다. ‘아니야, 경찰관들도 실적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 경관도 사정이 있었겠지’ 혹은 ‘그래, 더 큰일 당하기 전에 적당한 예방주사를 맞은거야’ 라고 애써 침착하려 시도하다가도 ‘에잇, 그깟 이만원, 내가 거지도 아니고 그냥 세금 몇 푼 더 내고 말지’ 혹은 ‘나는 왜 주말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이 깟일을 당하는거야? 그냥 늦잠이나 잘걸’ 하며 표출되지 못한 억울함에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나의 무단횡단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글중에 어느 일본인이 쓴 글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길 우리는 의도적으로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그 법이 옳은지를 항상 고민해보아야 하고 그것이 옳다면 의식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첫 걸음을 횡단보도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주택가 근처의 좁은 도로위에서 차가 오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면 굳이 시간을 꼭 낭비하며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좌우만 잘 살핀다면 오히려 신호가 바뀌자 마자 횡단보도에 뛰어드는 것 보다 안전하지 않을까? 그 일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통계적으로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너기 때문에 신호만 보고 바로 건너거나 핸드폰에 빠져 건너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사고 확률이 낮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이는 일본이나 유럽처럼 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국가에서나 나오는 통계일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운전자의 낮은 교통의식 개선이 급선무 일지 모른다.

우리가 법을 지키는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합당하다고 우리 역시 동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그렇게 교육 받았고 그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다른 모든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 뿐일 수도 있다. 과거 신호를 항상 잘 지키던 내 모습을 돌아 보았을 때 그것이 더 안전해서 그랬다고 나는 감히 말 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하는게 옳다고 배워서 였거나 단지 옆 사람들이 가만히 지키고 있으니 혼자 건너기 어려워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무리에서 혼자 튀는건 어렵기 마련이다.

이 일본인의 주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횡단보도가 아니라 주어진 규칙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바로 얼마전, 그리고 아직도 진행중인 이 역사에 남을 질서있는 대규모 집회에서 더 이상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물론 우리의 경우엔 아직 이르다는게 대부분의 의견이었고 나도 동의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평화가 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법의 처벌도 감내한 여러 위인들을 존경한다. 내 신념이 투영된 행동이 법을 위반하는 결과였기에 법칙금을 납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부에게는 납부할 세금이 없다며 납세를 거부한 헨리데이빗 소로우가 되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빨간 사람이다. 단지 그들의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빨간 것 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나라를 전복시킬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서 빨간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오늘 아침도 빨간 불이 들어오자 도로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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