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할 시간

일인 비효율의 시대. 혼자사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밥먹고 술먹고, 뭐든지 필요한것들은 각자가 사는 시대. 덕분에 우리는 더이상 눈치보느라 내가 먹기 싫은 것을 먹을 필요도 없고 필요한 것은 내 전용으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좁은 집은 단지 내 이름표가 붙은 중국제 잡동사니로 가득 차고, 누구 하나 만날 일 없는 날의 식사는 혜자 엄마나 종원 아빠 혹은 우리 이쁜 혜리가 싸주는 도시락 3종을 돌려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러려고 혼자 사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베리 아저씨네 집에서 잠깐 머물던 당시, 가장 만족 했던 것은 아저씨의 요리였다. 매일 오후 5시면 부엌엔 주황색 등이 켜지고 도마에는 칼날이 부딪히고 이내 돌아가는 오븐 소리는 거실을 따뜻하게 달궜다. 6시 30분이 되면 마침내 기다리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 오고 우리 네 식구는 식탁에 둘러 앉아 푸짐한 저녁을 나눠 먹었다. 그 집에서 나누었던 따스한 저녁 식사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그 타지 생활을 기분 좋게 회상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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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anksgiving Dinner

 

주 5일도 아니고 매일 저녁 2시간을 밥 한끼를 위해 소비한다는 것은 내게 납득하기 어려운 시간의 낭비였다. 식사 준비에 쓰는 10분도 아까워서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던 나는 아저씨가 요리에 대해 애착을 갖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젊을때 부터 요리를 즐겨 했는데 남자가 가지기 가장 좋은 취미는 요리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봐야 요리를 하지 않으면 다 쓸데 없으며, 요리를 하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할 수 있고 침대는 늘 네 곁에 있다는 그의 이야기에 다같이 즐거워 하며 은근히 설득당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의 나는 부쩍 자주 집에서 요리를 한다. 베리 아저씨의 주장 때문은 아니지만 비슷한이유가 은연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강변하자면, 내가 고기를 끊으면서 요리가 시작되었다. 메이드인 차이나 만큼이나 집요하게 파고든 요즘 육식위주의 식탁에서, 스스로 식재료를 가지고 조리하지 않는 이상 한 톨의 고기 조각도 허락하지 않는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요리에 대한 나의 게으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나는 늘 거의 한 가지 음식만 해먹는다.

파스타가 생각보다 만들기 간편하다는 점, 그리고 만들고 나서 보기에도 그럴싸하고 맛도 좋아서 파스타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 알리오올리오가 재료도 적게 들어가고 맛도 내 취향에 잘 맞았다. 아마 알리오올리오의 기름맛을 보면서, 채식이 기름진 생활과 거리가 먼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더구나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었기에 알리오올리오의 심심한 맛에는 치즈를 듬뿍듬뿍 넣어 간을 했다. 치즈도 계속 먹다보니 입맛이 까다로워져 스틱 치즈를 사다가 강판에 갈아 넣어 먹는 맛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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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made Pasta

 

알리오올리오는 마늘과 오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만큼 마늘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서 일인 가구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알리오올리오 일인분에 적당한 마늘의 양은 다섯에서 여섯 알이다. 헌데 마트에 포장해서 파는 깐마늘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이중 일부를 해먹고 남겨두면 며칠 안가서 변색이 되고 그러고 나면 먹기 싫어진다. 그래서 내가 이용하는 방법은 차라리 안 깐 마늘이 담긴 소형 빨간 망으로 하나 산다. 그러면 대략 50알 이상이 들어있는데 안 깐 마늘은 그대로 두어도 오래오래 보관할 수 있다. 직접 손질해야 하는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지만 일회용 용기 사용을 줄여 쓰레기도 줄이는 추가적인 장점이 있다.

요리를 하다보면 식재료를 직접 보고 고르면서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신선한지 확인하고 또 무엇무엇이 들어갔는지 알게 된다. 이로써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의 정체를 더 명확히 알 게 된다. 이게 무척 당연해야 할 것 같지만, 요즘 우리의 식생활은 그냥 식당에서 내어주는 대로, 공장에서 포장되어진 대로 내가 먹는 것의 정체에 대해 잘 모른채 이것을 생산한 기업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섭취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땅과 하늘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 세대는 기업들의 도덕성에 대해 대단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다.

우리는 사실상 우리 엄마로 부터 오는게 아니라 우리가 먹는것으로 부터 온다. 더구나 태어난지 30년도 넘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오래전에 나는 매일저녁 치킨을 시켜먹으며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정된 원자들이 돌고 돌아 모든 것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 중 닭으로 부터 유래한 것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 걸까. 비록 내 몸은 지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원자들은 불과 얼마전까지 닭의 형태를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차라리 그것이 콩이나 배추, 감자에서 왔다고 하면 땅에 대한 신뢰감으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리를 하며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결국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그것들은 결코 무시할 대상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조금더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요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베리 아저씨는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신 분이었고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날 만큼 부지런한 분이었지만 요리에 쓰는 시간을 아까워 하지 않으셨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한다는 점을 상기 할 때 요리는 사실 음식이 아닌 나를 만드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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