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야 할 때

나는 어릴적 부터 집보다 아지트를 원했다. 내가 처음 가졌던 아지트는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 책상 밑 작은 공간이다. 의자를 치우고 입구는 이불로 덮어둔채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불 위에 백과사전을 쌓아올리면 나만의 아주 작은 공간이 생긴다. 동생이 같이 놀자고 칭얼대기 시작하면 나는 의자 등받이를 기둥 삼아 평수를 넓히고 너덜하게 흘러내린 이불 한 쪽을 들춰 아지트에 드나든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만의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가졌던 나의 아지트는 4평 남짓한 반지하 원룸이었다. 방이 깔끔해서 좋았고 아담한 사이즈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사가 끝나고 부모님도 떠나고 나와 동생 둘만이 그 작은 방에 남았던 순간, 우리는 서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우리만의 진정한 아지트를 가졌다는 생각에 들떠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명이 누우면 공간이 가득차는 그 작은 방 안에서 우리는 밤새도록 엎드려 축구게임을 하며 긴긴 크리스마스 연휴를 함께 보내었던 기억이 있다.

캠핑을 떠났다. 짐을 배낭에 넣고 스스로의 힘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짊어지는 백팩킹트립이었다. 13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눈을 헤치며 걷는 종일의 행군 뒤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커다란 나무를 피난처 삼아 나만의 일인용 아지트를 세웠다. 마름모형의 작은 공간, 허리를 세우고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는 매우 비좁은 공간이지만 행복했다. 그날 탄생한 나의 한 평도 안되는 작은 아지트는 이 후 몇 년간, 때로는 산속으로, 때로는 해변으로, 때로는 사막으로 배경을 옮기며 흥분과 고독을 함께 나눴던 기억이 있다.

나는 자동차도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이 좋았고 그보다는 오토바이가 더 좋았다. 나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필요하다. 아지트란 본래의 것에서 벗어난 나만의 은밀한 다른 공간을 의미했다. 이 같은 작은 공간에 대한 집착은 모든 것이 나의 손에 통제된다는 안도감에 있었고 동시에 구석구석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소유하려는 욕구에 있었다.

세상은 상당히 거대하고 불필요한 소음이 너무도 많은 곳이다. 그 많은 소용돌이들을 모두 쥐고서는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다. 나는 내가 노트에 집착하는 이유가 필요한 것들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안다. 때로는 나만의 아지트로 들어가 소꿉놀이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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