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사람들 속에 유쾌했다싶은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 속은 한 발 늦은 생각들로 가득 찬다. 내 음악의 많은 역사는 그 길에서 쓰였다. 내 속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함으로 가득 차고 버려질 곳을 찾지 못하는 입안의 단어들은 보는 이 없이 홀로 투기된다.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때로는 Damien Rice의 피곤한 목소리에 몸을 기대어 보거나 혹은 Eric Clapton의 아련함에 빠진채 과거를 회상해 본다. 그러나 이들 마저도 그 허전한 마음이나 오물거리는 단어들에 전혀 미치지 못할 때면 좀 더 강한 처방이 필요하다.
라이브러리에서 아티스트로 정렬하고 스크롤을 내려 Muse까지 찾아 내려간다. 볼륨을 올리고 Citizen Erased로 가서 내 안에 아직 삼켜지지 않는 감정을 문질러 본다. 시작부터 귀를 찟는 기타 리프에 응어리를 할퀴고, 따라오는 드럼에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아득히 한다. 뒤이어 흐르는 Micro Cuts, Darkshines에 Space Dementia까지 이 앨범은 온통 훌륭한 마취제로 가득 하다.
집에 들어와 헤드폰을 스피커로 바꾸고 침대에 스러져 잠시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미처 넘어가지 않은 체증이 다시 살아나면 나는 일어나 기타를 잡는다. 두툼한 통기타 몸통을 상체의 맨살 위에 붙여 둔채 왼손으로 C-E-F-G를 차례로 짚어가고 오른손으로 6번 5번 줄을 힘있게 쓸어내려 몸통의 단단한 울림을 가슴으로 받아낸다. 그 두터운 울림소리에 아직 머물러있던 그 모든 느낌들은 다시 서서히 마취되어 간다.
그러한 마취 효과는 딱 그 순간, 내가 음악에 취해있는 그 순간에만 발휘된다. 음악이 멈추면 마취도 멈추고 나는 다시 원래의 소용돌이로 빨려내려간다. 내가 음악을 업으로 하게 된다면 그토록 마비시켜야 할 것이 많아서 일 것이다.
#2
음악은 합법적인 마약 중의 하나다. 우리가 마약을 단속하는 이유가 마약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라면 음악은 뭐가 다른가. 하지만 나는 마약에 대해 관대하다.
세상엔 치워야 할 쓰레기가 넘치도록 생산되고 그 쓰레기는 이 몸에서 저 몸으로 그들의 입을 타고 손을 타고 넘어다닌다. 어떤 이는 받은 쓰레기에 제것을 보태 다른 몸으로 넘겨주고 어떤이는 받는 대로 꿀꺽 삼켜 소화해낸다. 이때 음악은 훌륭한 소화액이고 갈 곳 없는 쓰레기들의 배출구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음악에 취해 쓰레기들을 소화시키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에게 음악 자체는 삶의 이유가 아니라는게 너무도 명백하다. 나는 좀 더 대답해야 할 것들엔 대답하고 받아내야 할 빚은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좀 더 냉정하지 못해서인지 무언가 부족해서인지 어디로 보내야 할 지 모르는 감정의 응어리를 마주 할 때면 나는 다시 음악에 취해 그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고 서서히 배출해내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 된다.
삶에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제가 종종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마약보다 독한 담배를 용인하고 주폭을 4대악으로 분류하면서도 음주를 불법화 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에겐 마취제로서 음악이 주어졌다. 그렇지만 내가 거기에만 취해있지는 않길 바란다. 이따금 내가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질때, 살아야 할 이유라고 느끼는 것들에 집중할 수 없을 때, 남들과는 어딘가 다른 미치광이라고 느껴질 때, 평생 혼자인 채로 삶이 끝나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더 이상 어떤 진전도 내 스스로 이끌어 낼 수 없을때, 그 때에 잠시만 모두 잊고 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