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남자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그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그녀를 우연히 만나 파티로 초대받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갔던 그 파티에서 그녀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본다. 그제야 그녀의 목에 걸린 화려한 장신구와 그녀가 새로 이사한 호화스러운 저택이 보인다. 그녀가 시작한 새로운 만남은 한 사람의 신분이 어떻게 상승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남자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현실적이었고 남들이 믿는것 만을 믿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었다. 룰을 깨는 법,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법, 그녀가 좋아하던 고리타분한 음악보다 더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남자는 그녀가 알을 깨고 나오도록 도와주었다고 믿었고 자신의 그런 역할이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운명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남자는 그녀에게 무슨 욕을 해도 정당화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는 드디어 운명을 만난것 같았다. 이 새로운 사람은 여자가 좋아하는 목소리들을 같이 들어주었다. 여자가 좋아하는 음악과 여자가 읽는 책이 무엇인지 관심 갖고 들어주었다. 그렇게 여자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면 우리는 생각이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이젠 지나가버린 그 남자가 말했던 운명적인 사랑이라는건 정말 존재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닫는다.

물론 그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여자가 처음 그를 만났을때 그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이 갔었다. 하지만 그건 여자의 것들이 아니었다. 여자는 항상 허전했다. 여자는 분명 남자의 새로운 것들이 좋았지만 자신이 부정되고 스스로를 잃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여자는 그에게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제 더이상 그것은 그가 여자의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가 자신의 진짜 운명을 찾아 떠나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라고 영화는 반복해서 말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관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남자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성장 영화이다.

흔히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감성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많이 본다. 특히 아직 사랑에 미성숙한 남자들이 쉽게 갖는 마냥 순수하기만 한 어떤 감정들이 있다. 아직 그 단계에 머물러 있는 그들에게 영화는 분명한 메세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