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본-4] 너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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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가 아닌 너라는 존재, 타인을 이야기 하기 전에 놓치면 안될 사실이 하나 있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너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 걸까? 혹은 질문을 바꿔, 세상은 결국 나 자신과 그 이외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나에 대한 의식은 일반적으로 우리 머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좀 더 정확히 위치를 짚자면 두 눈동자 바로 뒤 1~5cm 어디 쯤이다. 우리는 그 위치에서 세상 모든것들을 바라보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의 두 눈과 귀, 입, 그리고 코와 같은 감각기관들이 배에 위치했었다면 우리 의식 역시 배 바로 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겼을 거다. 이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의 감각기관에만 의존해 세상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감각기관들은 우리 머리에 함께 모여있음으로서 두 눈 바로 뒤 쯤 그곳에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도록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바로 그곳에 나의 존재가 적어도 실존한다고 느낀다. 또한 나라는 의식이 그곳에 존재함으로서 동시에 타인의 존재도 그곳으로 부터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이렇게 인식하는 타인의 존재는 정말로 우리 자신이 아닌 밖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좋아할때 내가 동경하는 어떠한 장점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동경한다는 말은 그것이 내게는 부족하거나 없는 것이어서 평소 나의 결점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도 된다. 결국 동경의 마음을 갖는 것은 나의 결점에 대한 어떤 “느낌”으로 부터 출발한 것이다. 또한 보통 이러한 느낌은 그동안 축적되어온 나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결국 말하자면 그 사람을 동경하는 행위는 그 사람이 동경할 만한 점을 가져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러한 동경, 혹은 그러한 동경을 유발한 결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상형을 갖춘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러한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우리 안에 그 사람이 내 이상형에 부합한다는 인식으로 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 그러한 생각과 잘 부합하는 글귀가 있다.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 페르난도 페소아

이것을 사랑이 아닌 증오로 바꾸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데미안, 헤르만 헤세

결국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때, 그리고 타인을 어떠한 형태로든 평가 내렸을 때, 그 타인의 모습과 평가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떤 ‘상’에 해당한다는 전제를 잊지말아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사랑을 하든 증오를 하든 그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굴곡들을 완만하게 제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았을 때 세상에 정말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