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무심코 펼쳤는데 열린 페이지.
내가 요즘 한창 고민 중인 주제와 일치하는 내용이 우연하게도 펼쳐졌다.
과거 히말라야에 들고 갔을 때에도 비슷했다.
그때도 힘든 산행을 마치고 펼쳐든 페이지에서 깨달음과 위로를 주었었다.
이 책은 내가 무언가 중요한 고비에 펼쳐봐야 할 마법서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것 같다.
일에 대하여
그러자 농부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에게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일을 함으로써 대지와,
또한 대지의 영혼과 발맞추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게으름 피우는 사람은 계절의 이방인이 되고,
무한을 향해
장엄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복종하며 행진하는
생명의 행렬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그대들이 일할 때
그대들은 하나의 플루트,
그 심장 속으로 지나가는 시간의 속삭임이 음악으로 변하는
하나의 플루트가 됩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노래할 때,
소리나지 않는 벙어리 갈대 피리가 되려는 사람이
그대들 중에 있나요?
그대들은 일은 저주요,
노동은 불행이라는 말을 늘 들었지요.
그러나 저는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그대들이 일할 때
대지의 가장 깊은 꿈의 한 부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그 꿈이 처음 잉태될 때부터
그대들의 못으로 남겨진 그 한부분을.
또한 힘써 일을 함으로써
삶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며,
힘써 일하는 것을 통해서 삶을 사랑하게 됨으로써만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그러나 만약 일하는 것이 힘겨워
태어남을 고통이라고 부르고
육체를 부양하는 것을
이마에 쓰인 저주라고 한다면,
저는 그대들에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대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그 저주를 씻어줄 것이라고.
그대들은 또한
인생살이가 어둠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요.
그리고 그대들이 지쳤을 때는
지친 자들이 하는 그 말을 그대들도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충동이 없는 삶이 참으로 어둠이고,
모든 충동은 앎이 없으면 장님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앎은 일하는 것이 뒤따르지 않으면 무익하고,
모든 일은 사랑이 없으면 공허하다고.
그리고 그대들이 사랑으로 일할 때
그대들 자신을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그리고 신께 묶는 것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으로 일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대들이 사랑하는 이가
그 천으로 옷을 지어 입을 것처럼,
그대들의 마음에서 자아낸 실로 천을 짜는 것.
그것은 그대들이 사랑하는 이가
그 집에 살 것처럼,
애정으로 집을 짓는 것.
그것은 그대들이 사랑하는 이가
그 열매를 먹을 것처럼,
조심스럽게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어들이는 것.
그것은 그대들이 만드는 모든 것 속에
그대들의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리고 그대들이 일할 때
은총 속에 있는 모든 죽은 자들이
그대 곁에 서서
지켜보고 있음을 아는 것.
저는 그대들이 가끔
잠꼬대하듯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리석 일을 하는 사람,
돌 속에서 자기 영혼의 모습을 찾아내는 사람이
밭에서 쟁기질 하는 사람보다
더 고상하다’ 고 하는.
또한
‘무지개를 잡아 옷감 위에
사람 모양을 수놓는 사람이
우리 발이 신을 신발 만드는 사람보다
더 낫다’ 고 하는.
그러나 저는 말합니다.
잠꼬대가 아니라
한낮의 활짝 깬 정신으로 말하건대,
바람은
거대한 참나무라고 해서
가장 작은 풀잎에게 속삭이는 것보다
더 상냥하게 속삭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더 감미로운 노래로 만드는 사람만이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일은 사랑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대들이 사랑으로 일할 수 없고
다만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일을 버리고 사원 문앞에 앉아서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이
사랑 없이 무관심하게 빵을 굽는다면
사람들의, 배고픔을 반밖에 채우지 못하는
쓴 빵을 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대들이 불평하면서 포도주를 짠다면,
그대들의 불평이 포도주 속에서
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대들이 천사처럼 노래할지라도,
그 노래 부르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노래가 낮과 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사람들의 귀를 멀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칼릴 지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