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폴 그레엄의 저서”해커와 화가”중 “9장. 창조자의 심미적 취향”을 읽고 남기는 글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분야에 있어서 취향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므로 어느 것이 옳다고 따질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미술 작품에 대한 개개인의 선호는 각자의 취향이므로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게 아마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약 모든 사람이 그 미술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개개인이 선호하는게 다르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
모두가 미술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은 다르고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안에서만 자신의 선호라는게 존재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개개인의 미적인 취향에 관해 위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내게는 바로 음악에 있어서 그와 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음악으로 이야기 해본다.
A는 어렸을 때 선물받은 일렉 기타의 영향으로 줄곧 락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았고, B는 사실 음악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어쩌다 한번 들은 발라드 음악에 쉽게 빠져 계속 비슷한 음악만 찾았다고 해보자. 이 경우엔 단순히 둘의 음악적 취향이 다르다고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아직 A와 B는 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모두 경험해 보지 않았다. 다만 그 음악의 장르들을 하나씩 접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데, 그때까지 접한 음악들 중에 자신이 좀 더 선호하는 것이 생겼을 뿐이다. 정확하게 음악이라는 전체 분야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이 락 혹은 발라드라고 말 할 수 있는게 아닌 것이다.
사실 나도 어렸을적 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여 듣던 스타일은 아니었다. 음악을 가볍게 듣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발라드 류의 음악을 특히 선호했던것 같다. 모두 알다시피 이런 장르의 음악은 한두번 들으면 쉽게 귀에 익숙해져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이다. 말하자면 대중적인 음악의 대표격이다. 따라서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르의 음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음악적 취향을 급격히 확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었는데, 그 당시 내가 호감을 두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듣는 음악들은 장르가 매우 다양했다. 그때 내게는 그 사람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곧 나의 관심사이기도 했기에 나 역시 그 사람이 듣는 음악을 자연히 찾아 듣게 되었다. 헌데 그 음악들에 내가 빠지게 될 줄이야.
그 전까지는 시끄럽기만 하고 반항적인 기질이 넘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클럽음악이나 힙합과 같은 장르들에서 갑자기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음악적 취향이 확장된 것이다. 내가 힙합과 클럽음악들을 줄곧 귀에 꼽고 다니며 즐기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음악에 있어서 취향의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헌데 이건 음악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본문에서는 미적인 취향에 대해 똑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 여기서 저자의 말을 빌리면
어떤 일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디자인하다 보면 디자인 실력이 늘어난다. 그리고 미적 취향도 변한다. 그렇게 실력 향상과 함께 자신이 점점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성장을 했다면 과거의 미적 취향은 단지 현재의 것과 달랐던 게 아니라 덜 성숙한 것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그냥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상대적으로 선택을 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만 가지고는 그것이 진정 자신의 취향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것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의 어머니가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잡지에서 본 영화배우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지 그것이 비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생각은 확인되지 않은 충동이 얽혀 있는 실타래와 비슷하다.”
따라서 말하고 싶은 건, 어떤 분야에서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쁨의 어떤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문의 내용에 따라 미적인 취향으로 돌아가 보면 미적으로 좋은 것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좋은 디자인은 간단하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제대로 된 문제를 해결한다.
좋은 디자인은 무언가를 제안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은 디자인은 조금 우습기도 하다.(유머를 포함한다.)
좋은 디자인은 어렵다.
…
이하 생략. 총 14개.
생각을 코딩으로 가져와보자. 코딩스타일은 개인의 주관이 많이 반영되는 분야이다. 분명 많은 코딩 스타일이 개인의 취향에 달려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에도 좋은 코딩 스타일과 나쁜 코딩 스타일 간에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관성 일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코딩 스타일이 더 좋은 스타일인지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을 개인적인 취향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코딩 스타일에 있어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지금 내게 좋아하는 음악이 무어냐고 물으면 딱히 한 가지를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모두 저마다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좋아하는 음악과 싫어하는 음악이 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것이 코딩이건 음악이건 간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코딩이고 좋은 음악인지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이건 내 취향일 뿐이야 라고 생각을 보류해 둔다면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 기준을 잘 세워 나가야 그 주제에 대해 더욱 성숙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