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 2013. 05. 06. 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어젯밤은 이번 여행중 가장 비싼 숙소에서 보냈다.
대략 혼자 1박하는데 20만원 가량을 들인것 같다. 헌데 어제 너무나도 고생을 했기에 정말 푹 쉴수 있는 그런 숙소가 필요했던거다.(이 고생한 스토리는 나중에 올리기로 하자)
비싼 숙소 가격만큼이나 푹 쉬고 느즈막한 시간에야 일어났지만 아직도 내 어께에는 어제의 고생이 생생히 남아있다.
일단 간단히 밥을 떼울 방법을 잠깐 고민하다 가져온 전투식량을 먹는다. (원래는 산에서 먹으려던 거였는데 그럴만한 사정이 생겼다…)
이렇게 불도 없이 요리를 한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산행시 짐을 줄이는데 효과적인거 같다.
오늘은 날씨가 이 모양이다. 따라서 당초 계획은 리프트를 타고 샤모니 주변 전망대를 올라가려 했지만 이 날씨에 올라가봤자 뭐가 보이겠는가. 샤모니 관광 일정은 내일로 미루고 이 참에 밀린 빨래나 하면서 오늘 하루는 정비나 해야겠다.
마을을 어슬렁 거리며 구경도 하고 관광정보센터에 가서 정보도 수집한다. 주변에 간단히 트래킹 할 수 있는 장소를 물었지만 아직 트래킹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 그 수많은 트래킹의 명소들은 눈 때문에 대부분 못간다고 한다. 대신에 알려준 길들은 그냥 마을 둘레로 한바퀴 돌수 있는 야트막한 언덕길들이었다. 이런건 내가 바랬던게 아니었다.
잠시 마음을 추스리고 현재의 심정을 엽서에 고이 담아 고국에 보내본다. 지금 내 심정은.. 이 여행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이다. 도무지 계획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비싼 돈주고 이 멀리까지 와서 그냥 목적도 없이 눈으로 구경만하고 끝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이게 이름이 뭐였더라? 하지만 맛은 기억한다. 고기가 한 점도 없어서 매우 건강해지는 그런 맛이었다.
지도를 펼쳐 오늘의 목적지까지 다가갈 루트를 만들어 본다. 오늘의 목적지는 샤모니 외곽의 글래시어 캠핑장이다.
오늘밤은 그곳에서 캠핑을 하기로 한다. 비싼 숙박비도 아끼고 자연에도 녹아들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거 같지만 이번 여행에서 첫 캠핑이라 잘 될지 모르겠다.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지만 일단 출발한다. 이 곳 날씨는 도통 종잡을수 없어서 비가 오다가도 금방 멈추기 때문에 비때문에 망설일 수는 없었다.
샤모니 주변의 산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 생각보다 어느정도 높이 올라왔다. (하지만 난 알프스 고산길을 걷는게 당초 목표였다고!)
비가와서 추적추적한 안갯길을 우의까지 뒤집어 쓰고 걷다보니 다소 지치지만 어느새 산길이 끝나고 다시 마을이 나온다.
비까지 맞아가며 오랜 길을 걸은 끝에 드디어 팻말이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점점 거새지던 빗줄기와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산길이 있었지만 도저히 사진 찍을 정신이 아니었으므로 생략한다.)
초입부터 무언가 다르다. 갑자기 마을이 사라지고 숲으로 들어서는 이 느낌.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덕분인지 점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다른 캠퍼들의 텐트를 보자 흥분되기 시작한다. 얼른 나도 함께 저들처럼 자리를 잡고 싶다. 그래 바로 이게 내가 원했던 거다! 숲속에 텐트하나로 자연에 녹아드는 저 모습 말이다. 그제야 이번 여행에 대한 근심을 조금 더는것 같았다.
자. 오늘 밤은 여기다. 열심히 자리를 고르고 골라 이 자리를 잡았다. 캠핑장은 꽤나 넓은 편이었기에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느라 또 한참 헤멨다.
아무래도 비가 계속 오고 있는 날씨었기에 조금이나마 비를 피할까 싶어 커다란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아본다.
아아.. 매우 아름답다.
내 곁에 우뚝 선 멋들어진 나무 덕분에 한 층더 분위기가 난다. 역시 자리를 잘 잡은것 같다.
매트리스와 침낭을 다 깔으니 아늑한 공간이 드디어 생겼다.
힘든 고생 끝에 맞이하는 휴식시간은 더 달콤하다. 이렇게 보니 나는 더욱 더 꿀맛 같은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일부러 생고생을 하고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좋다. 아주 자연스럽다.
이 얼마나 여유로운 자태란 말인가…
정말 숲속 한가운데 있어서 매우 조용하고 풍경도 훌륭한 캠핑장이었다.
게다가 각종 편의시설들도 매우 훌륭했다. 주방 및 샤워시설, 세탁기 거기다 무료 와이파이까지!!!
숙소에 머무르는 내내 즐거워서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먹거리를 미처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자판기가 있었다.
캠핑장 이용료는 13.5 유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문득 어젯밤 흥청망청 써버린 호텔비도 어느정도 만회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속에서 밤을 맞이한다.
다음날 아침.
밖에는 아직 안개가 가득하다.
따뜻한 침낭속에서 잠시 게으름좀 피우다 간신히 밖에 나온다.
그랬더니 눈앞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풍광이 펼쳐진다.
헉.
하늘이 새파랗게 개이고 그동안 구름에 숨어있던 알프스 봉우리들이 드디어 모습을 나타냈다. 너희들이 정녕 거기에 있었던 거냐?
기가 막힌 풍경으로 아침부터 큰 선물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캠핑장에 감탄한다. 사방을 모두 이러한 산봉우리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맑개 개인 날씨를 보니 오늘이야 말로 샤모니에서 리프트타고 관광하기 딱 좋겠단 생각에 서둘러 씻고 관리소에서 어제 신청한 바게뜨 빵을 받아온다.
!!!
생각보다 많이 크다. 1.3유로 치고는 꽤 큰거 같았다.
여러모로 아침부터 놀라는 날이다.
짐을 정리하고 샤모니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신난다. 어쩜이렇게 하루사이에 날씨가 맑아지는지 전혀 다른 곳에 와있는 느낌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사실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너무도 좋은 이 날씨에 반해서 풍광을 보며 길을 걷고 싶었다. 아마 누구라도 나와 같았을 거다. 그래서 40분 가량의 길을 다시 걸어 샤모니로 향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현재 기온이 섭씨 23도랜다.. 어제만 해도 10도에서 왔다갔다 하던 날씨가 어느새 반팔이 어울릴 법한 날씨가 되버렸다. 참 말도 안되지만 내게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샤모니로 돌아온 나는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 몽탕베르의 빙하를 보러 이동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