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른 것이 바람직하다.”

“불의한 시대에 의인이 갈 곳은 감옥 뿐”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단 몇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망설이고 후회하는가 하면 때로는 탄원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추진하여 효과를 거둘 정도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들이 악을 몰아내어 더 이상 자신이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호의적인 자세로 기다린다. 기껏해야 그들은 선거 때 값싼 표 하나를 던져주고, 정의가 그들 옆을 지나갈 때 허약한 안색으로 성공을 빌 뿐이다.”

요즘 같은 시국에 딱 적절한 제목과 내용이다. 헌데 이 글을 쓴 사람은 약 160여 년 전의 인물이니 도무지 이럴때면 세상이 전진하고 있는지 조차 의문일 지경이다.

어떻게 그 이른 시대에 다른 모든 이들을 뛰어넘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게다가 그것들을 직접 실천해 내었는지 상상하는 것 조차 내게는 감당이 안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 그간 내가 얼마나 내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겨 왔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실 그의 모든 생각에 공감할 수 있던건 아니다. 그가 추구한 작은 정부는 요즘의 흐름도 그렇고 내 생각과도 다소 배치되지만 (사실 그는 대공황의 실패도 맛보기 이전의 세대이니까) 그 마저도 사실은 그가 상당히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었으므로 현재에 어울리지 않을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그가 맞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해본다.

요즘의 흘러가는 상황을 보노라면 대체 인간의 욕심은 얼마나 끝이 없는 것인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찌 그리도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인지

헌데 또 드는 생각은 이런 한탄과 물음은 인류 태생이래로 계속 반복되었던건 아닌지
결국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걸까?

어찌되었건 소로우는 책의 말미에 나도 한 번 고민해봤음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여기에 소로우는 국가의 힘이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개인 중심 국가를 이상향으로 꿈꾸며 마무리 짓는다.(사실 민주주의도 그렇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왜곡되기 쉬우니까)

참 시기 적절하게 찾아온 그의 글은 내게 분명 의미하는 바가 있겠지.
그래서 이제 조그마한 행동들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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