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정말 왜 이들은 굶고 있는 걸까?

척박한 환경 때문에?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아니면 단지 원래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사실 이건 책을 읽기 전 내가 생각했던 이유들이다.
항상 이들의 얘기들을 뉴스등을 통해 접할 때면 애써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던 거 같다.
그랬다. 이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너무 익숙해서 아무리 그들이 심각하다고 얘기해도 잠깐의 감정적인 반응 외에는 더 이상 없었다. 이내 ‘그들은 원래 그랬으니까’라는 심리가 자리 잡았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북한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안다. 아니 잘은 몰라도 적어도 심각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디 그러한 소식을 하루 이틀 들었던가? 그렇다고 우리 행동이 얼마나 달라졌던가? 어느새 무덤덤할 뿐이다.

난 이 책을 보면서 반성해보게 되었다. 한 번이라도 이문제의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적 있었는지.
아마 고민해도 답을 알기 쉽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데 답이 있었으니까.

이 책은 그러한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진정 이들이 굶는 이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원인들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라고. 그 점이 이 책의 존재 이유다.

정말로 식량이 부족할까?
책에 의하면 지구는 120억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헌데 한쪽에서는 식량이 남아 버려지고 한쪽에서는 오늘도 굶주림에 고통받는다.
물론 식량은 정말로 부족할 수 있다. 사막화와 이상기후로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식량이 우리가 먹는 소, 돼지와 같은 가축들이 배불리 먹기 위해 쓰이고 그마저 광우병이나 구제역 한 번 돌면 이내 몰살당한다. 식량은 사실 분배의 문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런 불균형을 만드는가?

저자는 이 문제를 정치,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설명한다.
하루에도 10만명씩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그들 중에는 비옥한 농경지에서 많은 작물을 생산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하는 작물은 자급자족을 위한, 그들의 주식이 되는 작물들이 아니다. 식민지시대의 잔재로 아직도 단일 작물만을 집중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신식민지주의’로 인해 프랑스, 영국과 같은 구종주국들로 부터 정치적으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결과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작물을 수출하고 번 돈으로 쌀과 같은 그들의 주식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알지 않는가? 최근 공정무역으로 이슈가 된 커피 콩이 라든가 본문에서 언급한 땅콩 등이 얼마나 헐값에 팔려나고 있었는지.
이런 가격 문제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 아래 세계 최대 곡물 거래소인 시카고 거래소를 필두로 사재기 및 덤핑등의 가격 조작이 이루어 진다. 또한 그 나라의 부패한 공무원들은 이러한 현실을 방치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의 배를 채울 뿐이다. 여기서 깨달았다. 비단 북한은 우리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구나.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정말로 환경이 척박한게 이유이기도 하고 기반 시설이 미미한게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들은 대개 정치적 이유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인 움직임의 이유를 저자는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시카고 거래소와 같이 이윤 추구에 기반한 시장의 제어, 한 나라보다 더 부유한 초 거대 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 시장자유에 의거한 공기업들의 민영화. 모든게 자본가들에게 자유를 제공한 신자유주의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는 불공평했다. 가진자에게는 자유가 좋은 기회이지만 없는자에게는 자유가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본문에서는 다음 구절을 인용했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층에게, 많은 자본가들에게 현재의 지위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이념을 제공해 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자유주의는 없는자들이 추구해야 할 이념이 아닌 것이다. 헌데 많은 이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허황된 꿈을 갖고 그러한 이념을, 그러한 정치적 방향을 지지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꼭 나쁜게 아니라는건 안다. 어떤 이념이든 장단점이 있고 완벽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인류 모두를 위한 방향이 아니라 소수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이용되어져 왔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책에서 얘기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언제까지 이 불편한 진실을 마음 한 구석에 덮어두기만 할 것인가?
우리가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일 지라도, 설령 사실이 그러할 지라도 현실을 알고 있자.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행동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세계화로 가는 과도기에서 잠시 나오는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우린 좀 더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감대가 필요하고 따라서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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